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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을 우리의 유일한 하나님께 드립니다.모든 것이 감사합니다라는 조미선 대표님의 말씀을 그대로를 올립니다.
조미선대표님을 만나다.

인터뷰를 간다고 말씀을 드렸더니, 장문의 메모를 전달 받았습니다. 그냥 그대로를 올려드립니다.

레드엔젤봉사때, 새벽부터 300개의 빵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조미선 대표 : 안녕하십니까?
저는 서울중국인 교회의 조미선 자매입니다 (원래 이름은 조립휘입니다)
올해 48살이고요, 두 아이의 어머니입니다,
저의 지금직업은 식당사장입니다, 저는 내개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건대입구에 세개, 동대문에 하나), 사람들은 저가 아주대단하다합니다,
사실 저는 무능한 사람이였습니다. 하나님의 크나 큰 은혜를 입으서 할 수 있엇습니다,
저는 조금도 의심지 않습니다, 저가 시작한 일은 저가 잘하는 일은 아니였습니다,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셨기에 저를 초월한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이 모든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것이 아니고, 저에게 준 모든 은혜는, 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게 하기위하여서 입니다.

2007년 8월 20일, 저는 8개월 된 젓먹이아이를 데리고 8년 생사를 같이한 탈북자 남편을 찾아,이 생소한, 한국을 찾아왔습니다, 남편은 북한 의대학교 교수입니다, 목숨을 걸고 탈북하여 중국 길림에 왔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우리집 회사에 취업하게 된 남편을 알게되엿습니다
그의 가련한 신세를 알고 저는 동정하게 되엿습니다, 신분이 불안한 그는 저를 많이 의지하게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되였습니다, 저는 세속관념을 타파하고, 친척 친인들의 반대에 도무릅 쓰고, 남편을 위하여 직장을 버리고, 길림시에 가서 우리의 새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며 5년을 살았습니다.
남편은 한국 이탈북자를 우대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으로 가기를 기획하였습니다,
2004년 겨울에 한국행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실패하였습니다.
우리일행 4명과 다른탈북자 20명이 난닝 기차역에서 경찰에 체포되여서 저도 같이 구치소에들어가게 되였습니다, 며칠후 길림연길로 옮기는 4일 동안 남편은 저한데 온갖듣기 달콤한 말만 하엿습니다, 저는 저의 속내복을 남편에게 벗어주었습니다, 옆애 있는 경찰이 남자가 여자를 보호하여야 하지안녀나고, 저는 중국사람이니 옷을 다시 얻을 수 있지만, 남편은 북한에 가면 줄사람이 없지않습니까 라고 말하였습니다。

무선 이유인지 모러나, 우리는 연길에서 내몽고 呼和浩特(후허호트)구치소로 옮겨갓습니다,
내몽고는 길림보다 많이추워요, 한달 동안, 것옷만 입고, 샤워도 찬물로 하였습니다,
한달 후에 저는 무죄 석방되였습니다, 저 몸에 있는 돈과 물품은 벌금의 명분으로 압수하고,
약간의 차비만 남겨주었습니다, 저 보고 상소하라고 하였으나 포기하였습니다, 남편은 북한으로 송환되여 감옥에 들어가서 페결핵병에 걸렷는데, 감옥에서는 치료못하니 가족이 나서야 된다하여, 시동생이 남편의 친필서신을 들고 저한대와서 애걸하엿습니다, 편지내용은 가슴이, 에어질듣한말과, 불상한 내용이 였습니다, 마음이, 어질은 저는 남편을 구하기로 결심하엿습니다,저는 2년 동안 치료할 약품과, 가족들에게 줄 선물, 치료기간에 영양제를 사먹어라고 딸라로 환전 하여보냇습니다, 팔려간 남편의 누님도 구하였습니다, 일년 후 남편과 시동생이 같이 중국으로 또 탈북하였습니다, 저는 또 한번위험을 무릅쓰고, 저의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남편의건강회복을 위하여 큰병원과 명의사를 찾아가서 수소문하엿고, 매일, 때마다 소고기를 먹엇으니 소한마리 분량은 먹엇습니다, 남편의 건강은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왓습시다
남편은 또 다시 동생과 같이 한국행을 결심하엿습니다, 저는 말리지 못하엿고, 또 많은 비용을들여서 남편을도왓습니다, 갈라질때 당신은 나와 나의 가족의, 구명 은인이니, 한국행이 성공하면 같이 한국에가서 평안하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자하엿다, 오번에는 한국행이 성공하엿습니다, 응당이 행복하고, 서로사랑하는 가정이였어야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이기적이고 탐욕이, 이성을 잃음으로, 우리의 가정은 파귀되였습니다。남편은 은혜를 원쑤로 갚앗습니다, 남편은 같은 탈북자 젊은여인을 사귀게 되였고, 동거까지 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정하게 저와 아이를 버렸습니다, 그 당시 한국이라는 나라는 생소하고, 언어도 안통하고, 돈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엇다, 저는 절망하였고 정신은 붕괴되였습니다, 원한과 죽음이 머리에 곽찻습니다, 높은층 집우에나, 전철역에서나, 화장실에서나, 죽고싶은 생각뿐이예요, 원쑤도 갚고싶고, 남편과 그 여자를 찾아서 같이 죽고싶었다, 원쑤를 갚기 위하여 전철을 탈때 돈이없으서 강재로 출구를 나갔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하니 젖이 없어니, 아이는 배가 고파서 보채고, 저는 계속 복수하려고 다녓습니다 하늘에 부러 짖어도 응답이 없고, 땅을 두드려도 아무런 답이없습니다

마음씨 좋은 한사람이 전화번호를 알려주엇습니다 (02~865~3163서울중국인교회)
저는 이 구명전화를 걸엇습니다, 전화에서 알려준대로 서울중국인교회를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의 위로의 말에저는 흐느꼇습니다 저는 의지할 곳 집이잇게되엿습니다
저와 아이가 교회에 오므로 원래 가난한교회에 부담이 되엿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난색한표정이 조금도 없이 각종압력을 이겨내고, 저를 위하여 피난처를 마련하엿습니다 , 저가오므로 교회에 경제적 부담이 생기니, 일부 교인들은 멸시의 눈빛으로 쳐다보며, 심지어 악언으로 저를 좇아내려고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다수교인들은 저를 동정하엿고, 목사님은 겁나하지말라, 우리는 한가정이다, 우리 같이가자고 하엿고, 기도하고 성경학습하자, 모든 것을 다 극복할 수 있다고 저를 안위하였습니다.

당시 죄가 많은 저는 목사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매일 목사님의 독촉하에성경을 학습하고, 성경을 외웠습니다, 성경의"악을악으로 갚지마라 선으로 악을이겨라""원수가 주리거든 먹아라, 목마르거든 마시게하라"시편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네게 부족함이 없어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풀밭에 누우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 영혼을 소생 시키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함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원수의 목전에서 내게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내머리에 부으셨으니 내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 니내가 여호와의 집에 여원히 살리로다"
시편 1편등을 외웟습니다, 이렇게 하루 하루 피난처에서 일년반이 되였습니다, 책임감이 생기게되엿습니다, 두아이의 생활비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며 현장에다니며 각종 고난을 이겨가며시련을 이겨갓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고, 저에게 힘을 주며 지혜를줍니다,
그리하므로 다른 작업자보다일도 잘 하여 보수도 더 많이 받아서 두아이를 양육하는데 부족함이 없고 헌금도 할 수 있었습니다,

아시아의 의리 천사 김보성, 김경진과 함께

2013년 큰 아들이 한국 대학에 다니므로 경제곤난으로 매주 마다교회에가서 예배를 드리지못하엿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구하기를 어떤고난도 이겨낼수 잇으니, 저에게 이 가정을 먹여 살리게 하여주소서, 주여 저의 작은 아들도 유치원에 다니는대, 데려다 줄 사람이 없으니 주님께서 같이하여 주시없고 지켜주시없소서, 저는 무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의 기도를 들으주셧습니다, 저는 특근 도자주하게 되엿고, 상사의 배려도 많이받았습니다, 6년 후 에하나님은 저의 가정에 복을 주사, 마음씨 좋은 남편도 주셧고, 새 남편이 돈을 빌려서 작은 식당을 운영하게 되엿습니다, 상상 빡에 지금 까지 식당 운영이 잘 되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영광을 우리의 유일한 하나님께드립니다. 

항상북적이는 식당 (건대점)
미선미식성 (동대문점)

사카이 기자  414015151@qq.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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